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을 창립하며 독자적인 심리학 영역을 구축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860년대에 이르러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자아'와 '초자아'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리비도는 초기 프로이트, 타나토스는 2차 대전을 치르고 난 이후의 프로이트가 제창한 개념이다. 인간 행동의 기반을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로 보았다고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 그리고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한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 정신분석이 심리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의식'의 발견, 그리고 심적 결정론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비판의 소리보다는 그 이론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부분들과 문제점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반발감 등으로 영향력이 작아져 현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이 차지하는 부분은 크지 않다. 특히 실험심리학자 중 정신분석학을 지지하는 학자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현대에 와서 정신분석학은 주로 임상가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정신분석은 문학비평 등 심리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주목을 받는 추세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성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새로이 정의하였으며, 치료 관곙서 감정 전이의 이론, 꿈을 통한 '무의식적 욕구'를 관찰하는 등 치료 기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신프로이트주의에서 프로이트의 많은 이론을 버리거나 수정하였는데 그는 뇌성마비를 연구한 초기 신경병 학자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생각은 인문 과학과 일부 사회 과학에 계속 영향을 줄 것이다. 프로이트 이후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정신 분석가들이 배출되었으며, 그들 중 유명한 학자로는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융,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아들러 등이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곧 과학적 엄밀성의 결여, 경험적 증거의 부족, 이론체계의 반증 불가능성 등으로 인해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과학철학자 포퍼에 의해 유사 과학의 세 가지 사례 중 하나로 지적받게 되면서 지위를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1885년 10월 프로이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학자인 장 마르탱 샤르코와 공동 연구차 파리에 갔다. 그는 이때 파리에 간 경험이 재정적으로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신경학 연구 대신, 정신 병리 치료로 진로를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그의 공동 연구자인 샤르코는 최면 감수성을 전공하였지만, 프로이트는 최면 기법을 더는 치료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유 연상과 꿈 분석을 좋아하게 된다. 샤르코 본인도 말년에는 자신의 연구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였다. 1886년 프로이트는 자신의 신경과 진료소를 차린다. 그는 트는 신경계 환자들에게 최면 기법을 실험하였으나 많은 대상자에게 최면이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이 치료 방식을 포기하였고,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치료법을 썼다. 이 방법은 "대화 치료"라고 부르게 되는데, 대화의 최종 목적은 환자가 처음에 거부하고 있으며 무의식에 갇힌 강력한 감정 에너지를 풀어주는 것이다. "대화 기법"은 정신 분석학의 기초로 널리 평가받고 있으며 그는 이것이 종종 정신의 정상적인 기능에 해를 끼치며 육체적 기능까지도 저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심신증이라고 설명하였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이트는 수많은 심신증 장애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 그 밖에 공포증에 시달렸다. 이때 그는 자신의 꿈, 기억 그리고 본인의 인격 발달의 변천에 대해 탐색하는 데 몰두하였다. 프로이트는 이런 자신을 분석하면서 어린 시절 매력적이고 따뜻하며 포근했던 어머니에게 느낀 성적 감정을 상기하였다. 자기 분석을 계속하여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들을 모아 라이프치히와 비엔나에서 "꿈의 해석"을 출판했다. 그리고 정신학 분석을 연구하여 빈 정신 분석 학회를 만들었다. 1930년 프로이트는 심리학과 독일어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 상을 받았고 비엔나에서 반유대주의 감정이 들끓었으며, 프로이트와 가족의 집에는 비밀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하였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프로이트는 구강암 때문에 생전에 30번 넘게 수술받았는데 그의 의사이자 친구인 막스 슈어를 설득하여 자살을 돕도록 하였다. 비엔나 정신 분석 학회가 해산당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책과 재산이 모두 몰수당했다. 이때 프로이트는 자유롭게 죽기 위한 망명길을 오르기로 결심하였다. 1939년 9월 23일 프로이트는 사망하였고, 죽은 지 사흘 뒤에 그의 유해는 영국 골더스 그린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생전 그는 시간 약속을 지나칠 정도로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었고, 양모 정장에 옷감은 꼭 아내가 골라준 것만 썼다. "양복장이의 인상이 내게는 담당 교수의 인상만큼이나 중요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자존심이 강했다. 심리학도 다른 사회과학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질적 연구 방법과 양적연구방법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한다. 심리학이 사용하는 방법의 과학성은 심리학을 경험과학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주로 임상가들에 의해, 후자는 주로 기초 분야 전공자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나 양자가 혼용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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